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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진짜 AX가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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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를 하기 싫어서 딴짓을 해본 경험은 누구나 학창시절에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내 눈앞에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는데, 그것만 아니면 뭐든지 열심히 하게 된다.

아쉽지만 지금 많은 회사들의 AX가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AI가 일하는 방식을 바꿨다는 건 아무도 반박할 수 없다

LLM을 위시한 에이전트의 발전은 실로 놀라울 정도이고, 그로 인해 모두가 생산성 증가를 느끼고 있다. 이에 따라 이른바 AI 활용에 대한 강의와 기업들의 AX 컨설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속을 열어보면 그냥 SI/SM 모델이라는 것이다. 요구사항을 적고, 개발하고, 유지보수한다. AI로 개발했을 뿐.

일회성 컨설팅과 단발성 구축 프로젝트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AX로 오해하면 문제라고 생각한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조직에 남는 것은 남이 만든 시스템 하나와, 그것을 유지보수할 역량이 없는 상태다. 다음 과제가 오면 또 외부를 부른다. 아무것도 축적되지 않는다.

내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나다

그 도메인에서 그 누구보다 전문성과 암묵지를 갖고 있는 사람. 한두 번의 미팅으로 그 암묵지를 끌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도메인 전문가가 설계와 개발까지 잘하면 좋겠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다. 문제를 가장 잘 아는 것과 해법을 가장 잘 설계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럼에도 출발점은 당사자여야 한다. 설계를 도와줄 사람은 나중에 붙일 수 있지만, 문제 정의가 틀린 채로 시작하면 아무리 잘 만들어도 쓸모가 없다. 그리고 내가 직접 해결한 문제여야, 다음 문제가 생겼을 때도 내가 고칠 수 있다.

우리 조직은 지금 몇 단계인가?

기업의 AI 도입 단계를 세 개로 나눠 보겠다. 중요한 건 단계 자체가 아니라, 단계마다 조직이 해야 할 일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1단계 — 도입조차 하지 못한 조직

Claude Code, Codex 같은 도구를 아무도 쓰지 않는다. 그냥 아무도 시작하지 않았다.

필요한 건 불씨 하나이다. AI에 관심 있어 하는 사람에게 AI를 구독해주고, 마음껏 사용하게 해준다. 그리고 한 달 뒤에 뭘 만들었는지 물어보자.

2단계 — 일부가 알음알음 쓰는 조직

개인이 사비로 구독해서 쓰고, 옆자리 사람이 어깨너머로 배운다. 지금 대부분의 회사가 여기 있다.

회사 비용으로 도구를 도입하고, 사용 가능 범위를 명문화하고, 성과 공유회와 해커톤으로 서로가 전파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여기까지만 와도 많이 온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3단계 — 전사적으로 도입한 조직

회사가 비용을 지원하고, 업무 공유가 활발하며, 구성원의 자발적 참여가 일어난다.

이 단계의 과제는 확산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이다. 이제는 각자가 도구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만들어진 것이 유지보수되고, 사용하지 않으면 안전하게 폐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조직이 진짜로 해야 하는 일

1. 도구를 쥐여준다

무엇이든 좋지만, 가능하면 에이전틱 플로우가 되는 도구(Claude Code, Codex, OpenCode 등)로. 대화만 가능한 AI와, 파일을 읽고 명령을 실행할 수 있는 에이전트를 주는 것은 천지 차이다.

2. 분위기를 만든다

성과 공유회, 해커톤, 사내 채널 등을 통해 각자가 AI를 써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이를 통해 AI를 직접 체득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3. 인프라를 깐다 — 개발자가 할 일

  • 배포 환경: 비개발자가 만든 것도 빠르고 안전하게 올라가는 클라우드
  • SSO: 구성원이 안전하게 접속하고, 에이전트가 인증할 수 있는 경로
  • VCS: 이 지식(코드)들이 개인 노트북과 함께 사라지지 않도록
  • DESIGN.md, 디자인 시스템: 누가 만들어도 일관된 디자인으로 보이도록

4. 실무자에게 일을 더 만들지 않는다 (가장 중요)

AX라는 미명하에 실무자의 업무를 늘리면 안 된다.

암묵지를 모으겠다고 KMS를 구축하고 각자 직접 올리라고 하면, 개개인에게는 일이 늘어날 뿐 해준 것이 없다. 위키를 만든다면 Jira, GitHub, Google Workspace 등 이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 인덱싱해 와야 한다.

사람이 시스템에 맞추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사람에게 맞춰야 한다.

챔피언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분야에도, 우리가 생각지 못한 곳에 인재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챔피언(Champion) 이라고 부르고 싶다.

영업에서 챔피언은 고객사 내부에서 우리 대신 설득해주는 사람을 뜻한다. 외부인이 아무리 잘 말해도 내부의 한 사람만 못하기 때문이다. AX도 정확히 같다.

가장 좋은 예는 광진구청 류승인 주무관님이다. 경영학과를 나온 IT 비전공 공무원이 현장의 비효율을 스스로 타개한 사례다.

그가 만든 문서 도구는 수십 개 문서를 한꺼번에 비교해 바뀐 부분만 골라낸다. 수백 건을 일일이 대조해 엑셀로 옮기던 작업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함께 만든 ‘한국법 MCP’에는 조문번호 변환, 별표·별지 서식 추출처럼 실무자가 아니면 필요한 줄도 모를 기능이 붙어 있다. (관련 기사)

핵심은 이것이다. 어떤 개발자도/컨설턴트도 “조문번호 변환이 필요하다”는 요구사항을 도출해내지 못한다. 그건 그 일을 해본 사람만 아는 고통이다.

AI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은 개발도 기획도 아니고, 무언가 바꿔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AI를 사용하는 것이다.

다만 “의지 있는 사람이 알아서 열심히 한다”는 말은 너무 무책임하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조직의 성과가 아니라 개인의 예외적 헌신일 뿐이다. 그들이 번아웃되거나 이직하면 끝난다. 그래서 챔피언을 만들 수 있는 공식을 세워야 한다.

  • 시간을 준다. 업무 시간의 일정 비율을 공식적으로 투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AI를 활용해 업무를 개선하는 것은 딴짓이 아니다.
  • 평가에 반영한다. AI로 아무리 많은 업무를 개선했어도 원래 일로만 평가받는다면 의욕이 사라진다.
  • 역할로 만든다. 타이틀이 있어야 책임감도 생기고, 무엇보다 후임이 생긴다. 이름이 없으면 그 사람 개인기로 끝난다.
  • 혼자 두지 않는다. 챔피언끼리 상호작용하며 서로의 시행착오가 조직의 자산이 되게 해야 한다.

더 나아가…

모두가 개발을 하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이렇게 된다.

  • 만든 사람이 퇴사하면 아무도 손댈 수 없다
  • 고객 데이터를 보안이 취약한 서비스에 임의로 저장 / 반출한다
  •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팀마다 하나씩 중복으로 있다
  • 아무도 안 쓰는 도구가 비용만 잡아먹는다

그렇다고 통제하면 2단계로 돌아간다. 필요한 건 AI 툴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등록은 강제하되 가볍게. 사내 배포 환경을 쓰면 자동으로 목록에 잡히게 자동화한다. 등록하는 데 공수가 든다면 사람들은 몰래 쓴다.

폐기 기준을 미리. 90일 이상 사용 기록이 없으면 알림, 무응답 시 아카이브 등 정책을 세운다

등급을 매긴다.

등급요구사항
개인용자유롭게 사용. 데이터 반출만 금지
팀용VCS 등록, 담당자 할당, SSO 연동
전사용코드 리뷰, 보안 검토, 개발팀 등 전문 운영 주체로 이관

처음부터 전사용 기준을 요구하면 아무도 시작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와야 지속 가능한 모델로서 작동할 것이다.

에이전트가 접근할 수 있는 도구를 써야 한다

AI가 사람 대신 일하려면 AI가 마음대로 기존 업무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도구를 고를 때 이걸 체크해보자.

  • 문서화된 API가 있는가
  • 봇/앱을 자유롭게 붙일 수 있는가
  • 웹훅이 있는가
  • OAuth나 서비스 계정으로 에이전트가 인증할 수 있는가
  • 데이터를 내보낼 수 있는가
  • MCP 서버가 있는가

AX 수준이 높은 기업들이 Slack과 Google Workspace와 같은 툴들을 사용하는 것은 브랜드 때문이 아니라 이 항목들을 대체로 통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채팅방에 봇 하나 마음대로 붙일 수 없는 메신저를 쓰고 있다면, 그 조직의 AX는 시작부터 천장이 정해져 있다.

성숙도 체크리스트

1단계 탈출 조건 여기서 막히는 이유는 대개 월 몇만 원짜리 AI 구독을 승인받는 데 2주나 걸리는 조직인 경우이다.

  • 에이전틱 도구를 회사 비용으로 쓸 수 있다
  • 사용 가능 범위와 금지선이 문서로 존재한다
  • 최소 한 명이 실제 업무를 AI로 바꾼 사례가 있다

2단계 탈출 조건 2단계는 가장 오래 머무는 구간이다.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 몇 명 있고 사례도 나오지만, 그 사람들이 없으면 전부 멈춘다.

  • 사례를 공유하는 정기적인 자리가 있다
  • 비개발 직군에서 나온 사례가 있다
  • 배포 환경, SSO, VCS가 비개발자에게도 열려 있다

3단계 유지 조건

  • 라이프사이클 기준이 있고, 실제로 작동한다 (폐기된 도구가 있다)
  • AI 도구를 쓰거나 업무를 개선할 시간을 배정받는다
  • AX를 위해 실무자가 추가로 입력·등록하는 작업이 없다

다시, 숙제 이야기

숙제를 하다 말고 방 청소를 하게 되었다.

방 청소는 즐겁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바로 나오고, 하는 동안 뭔가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아무리 방이 깨끗해져도 숙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내부에서 고민 끝에 이뤄져야 할 일들을 한두 번의 컨설팅이나 AX라는 이름의 외부 조직에 통째로 맡기는 것이 그렇다. 눈에 보이는 산출물도 있고, 보고할 것도 생겼다. 그런데 우리 조직이 스스로 문제를 푸는 능력은 하나도 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숙제가 온다.

내가 생각하는 AX란 결국, 각자가 자기 숙제를 스스로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